Tuesday, May 27, 2025

mosaic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항상 그 사람의 취향을 더 알아내는 데에 목을 매곤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언제나 그 대상을 동경하게 돼 버렸으니까. 상대는 이상향, 나는 그냥 워너비가 되어버리는 거다. 그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책이나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좋아하고 즐기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다음엔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보고, 음악을 들어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본다. 콩깍지를 빼놓고도 즐겁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으면, 그걸 내 취향 리스트에 추가하게되고 결국 그게 내 취향이 되는 식으로 내 취향이 확장되어왔다. 남들도 다 그런 지는 모르겠고 딱히 그런 걸 궁금해 했던 적도 없지만 나한테 솔직해지기로 결심했고, 이 글을 쓰는걸 그 시작으로 정했다.


제일 멀리있는 어린 기억의 그 애는 신기한 힙합 노래를 좋아했는데, (그때 나는 하우스, 댄스팝 같은 걸 즐겨 들었다) 지금 들으면 2초만에 넘겨버릴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가득 담아놓고 듣곤 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노래방에 가선 잘 하지도 못하는 랩을 하며 그 노래를 불러줬었다. 그 땐 그 애도 그걸 들으며 좋아했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떠올리기도 민망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애가 내게 남긴 취향 중 하나는 독서다. 그 애는 책을 좋아했고, 그게 되게 멋있어보였다. 책을 읽는 걸 옆에서 보고있기도 하고, 따라 책을 읽기도 했다. 사실 이건 좀 복잡하다. 그 애가 내 삶에 들어오기 전에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런식으로 내 취향에 기억이 묻어서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라는 자아가 더 강해지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직업이 작가나 영화감독, 음악가일 때면 이런게 더 재밌게 느껴졌다. 예술가들이 영감을 받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좋아한다는 무언가를 알게 되었을 때보다도 훨씬 달콤하게 다가왔다. (그들이 영감을 받는 작품이라면 깊이가 다를거라는 기대같은걸 했다) 그렇다고 그 작품들이 언제나 내게 그만큼의 재미나 영감을 주던 것도 아니지만. (불쾌하거나 지루하기만 한 작품들도 많았는데, 어린 마음에 예술에 대한 나의 무지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거라는 판단을 내린채 부끄러워 당당히 밝히지 못한 감상평이 메모장에 쌓여있다) 생각해보면 똑같이 별점 10점이 매겨진 작품이라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묻으면 배로 달콤하게 다가오는 그 기분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엔 이상한 나의 취향 확장 방식 때문인지, 나의 취향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사실 내 눈에는 그냥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을 조각내서 이어붙인 모자이크같이 보인다. 

남들은 평범하게 음악이나 책, 영화 등을 디깅하며 취향을 넓혀갈 때 나는 사람 디깅..을 했다는 생각을 하면 뭔가 변태 스토커같고 기분이 이상해진다. (물론 내 취향 중 순수 작품만을 감상하고 매료되어 갖게 된 취향 또한 파이의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아무튼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남들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들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님 정말 나만 이런건지 의문을 품고 살아왔는데, 스토킹이나 하는 음침하고 이상한 애로 몰릴까봐 두려워 한번도 입밖에 내지 못했다.

상대의 사생활을 알아내서 집착하거나 일상에 끼어들려는 게 절대 아니라는 점에서 네버절대로 스토킹이나 하는 스토커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상대가 드러낸 본인의 취향을 나도 경험해보고 그 안에서 즐길 거리를 탐구할 뿐이다. 상대가 본인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길 멀찌감치서 바랄 뿐이다.


말로는 절대 스토킹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걸로는 정말 '내가 스토킹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떨칠수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지피티에게 고민을 털어놨는데, 몇 번 말을 주고받던 지피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탐정놀이 같은 쾌감, 심리적 연결 욕구, 투영과 대리만족, 현실 회피'와 같은 요소 때문에 취향 스토킹을 하게 될 수도 있으나 선을 지킨다면 문제가 될 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게 아니었다. 난 대리만족 연결욕구 이런 걸 얻고자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좋아하는 상대가 평소에 이런 걸 먹고 보고 듣는구나,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거쳐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와 같은 시간대를 살며 같은 속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구나라는 이해심이 들때쯤 조금 확장된 취향과 함께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갔다.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의 직업이 예술가든 아니든 시작은 언제나 동경심/팬심이었지만, 상대를 사람 그 자체로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에게 드러내 보여준 모든 걸 내가 존중하게 될 때쯤 내가 스토킹이 아닐까 걱정하는 이 행위도 멈추게 된다는 말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경험해보며 즐거워했던건, 언제나 비어있던 위시리스트가 가득 차는 기분이 좋았던게 전부였던 것도 같다.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할 고전명작영화 100편" 같은 걸 정리해둔 블로그에 들어가서 고른 몇개의 작품에는 금방 흥미를 잃으니까. 어쩌면 문화생활을 할 동기부여 같은걸 이렇게 얻는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주제를 잘 정리해내고 싶어 여러 포스트들을 찾아보며 내린 결론으로는,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누군가의 사생활에 대한 스토커적인 집착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 성향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상대의 영향을 크게 받을 뿐이다. 상대가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나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한 번 더 경험해보는 거다. 


어떤 음악가가 말하길 음악에는 기억이 묻는다고 하던데, 난 취향에 기억이 진하게 물드는 것 같다.


결론 1. 앞으로는 상대의 공간을 지금보다 훨씬 더 존중하고 조심스럽게 여기자.

결론 2. 아직 난 완전한 취향을 가진 어른이 되기엔 한참 멀었고, 그게 다행이다. 사람에 데이고 상처를 받아도 앞으로 취향과 가치관이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데에 희망을 갖자.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라는 인격체는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물론 더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내 결론이 사실과는 다를지라도 이렇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싶다. 


... 나에게 솔직해지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써내려온 글인데 이대로 끝내기엔 그냥 내가 이상한 사람이란걸 고백하는 글일 뿐인 것 같아 몇 문장을 덧붙여야겠다.

이런 나에게도 자생한 취향같은 게 있다. 취향이라기보단 고집같은거지만. 여름엔 복숭아를 먹어야하고 여름에도 바디로션을 꼭 발라야하고, 비누는 향이 부드러운것만 써야하고, 손톱을 무조건 짧아야하고, 사과는 시원하고 아삭해야하고, 냉동 블루베리는 살짝 녹아야만 먹는다.


*다 쓰고보니 너무 많은 걸 드러낸 글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내가 나에게 솔직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이런 걸 털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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